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로슬라프 플라실 (문단 편집) == 클럽 경력 == 체코의 흐라데츠크랄코베의 유스팀 출신으로 1998년에 1군으로 콜업된 후 프로데뷔를 했다. 2000년 18세의 어린 나이로 AS 모나코에 입단했으나, 2년 간 8경기 출장에 그치며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지 못하였다. 이후 크레테유로 임대되어 출전 경험을 쌓았고, 임대에서 복귀한 이후 바로 주전으로 등극하며 클럽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에 기여한다. 2007년 8월 25일, 플라실은 부상으로 이탈한 [[자바드 네쿠남]]의 대체자를 구하던 [[CA 오사수나]]와 225만 유로의 이적료로 4년 계약을 채결했다. 그의 데뷔는 9월 16일, [[FC 바르셀로나]]와의 [[라 리가]]경기에서 후반 26분에 교체 출전한 경기였으며, 팀은 득점없이 무승부를 기록했다. 12월 2일,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전에서 왼발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만들어내며 입단 후 첫 득점을 신고했고, 그의 골에 힘입어 2:1으로 승리했다. 첫 시즌에 오사수나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부상으로 빠진 네쿠남의 공백을 훌륭히 매웠다. 다음 시즌에도 그는 여전히 베스트 11에 포함되며 주전으로 뛰었다. 2008년 10월 5일, [[라싱 데 산탄데르]]전에서 [[에세키엘 가라이]]의 슛을 손으로 막으며 퇴장 당하며 페널티킥을 내주었으나 상대가 실축했다. 그러나 팀은 0:1로 패배했다. 2009년 5월 31일,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홈경기에서 동점골을 기록했고, 탄력을 받은 팀은 2:1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2008-09 시즌이 끝나고 그는 다음 시즌에도 그는 32경기 4골을 기록했다. 2009년 6월 9일, 그는 [[리그 앙]] 챔피언인 [[지롱댕 드 보르도]] 약 300만 유로에 4년 계약을 맺고 프랑스로 복귀했다. 그리고 [[트로페 데 샹피옹]] [[EA 갱강]]과의 맞대결에서 [[레프트윙]]으로 선발출전하며 첫 경기를 치렀고, 팀은 2:0으로 승리하며 타이틀을 추가했다. 빠르게 보르도의 중심 선수로 자리 잡은 플라실은 2013년 5월 31일 [[토농 에비앙 그랑 주네브 FC|에비앙 TG]]과의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에서 주장으로 출전했고, 3:2 승리를 기여하며 보르도에서의 두번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2013-14 시즌을 앞두고 [[세리에 A]]의 [[칼초 카타니아]]로 1년간 임대를 다녀오기도 했으며, 복귀 후 다시 보르도에서 정기적인 출전 기회를 얻으며 주전으로 뛰었다. 2017년 6월 7일, 그는 팀과 계약을 1년 더 연장한다. 6개월 후, 그는 컵의 마지막 64에서 4부 리그인 US 그랜빌과의 경기에서 퇴장을 당한 3명 보르도의 선수 중 한명이었고, 팀은 졸전끝에 1:2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는 퇴장으로 인해 5경기 출전 정지를 받기도 했다. 2019년 7월, 플라실은 37살의 나이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보르도 리저브팀의 코칭 스태프에 합류했고, 2020년 8월 10일부로 A팀의 수석코치로 임명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